<옥자>- 이상한 나라의 소녀 images du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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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스러운 혹은 봉준호 적인 영화란 무엇일까? 봉준호의 영화는겉으로는 장르영화로 보이지만 그 장르를 뒤틀며 사회비판적인 코드를 기묘하게 숨기는 듯 혹은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말하자면 <괴물>을그저 괴물이 등장하는 잘 만들어진 한국적 괴수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괴물을 만든 것은 과연무엇인가를 질문한다면 이 영화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강의 괴물이  가지는 장르적 함의와 사회정치적 함의의 결합이<괴물>을 독특한 영화로 만들었으며, 봉준호영화 세계를 다른 감독들의 세계와 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다. <옥자>는 거대한 짐승이 등장하는 면에서 <괴물>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괴물>에 비해 부드러운 환타지 영화에 더 가깝게 보여짐으로써 (<괴물>과 달리, <옥자>2.35:1 의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율은 이러한 면을 강화한다), 봉준호판 E.T 혹은 미야자키 하야오적 세계와 (야생과 문명의대비, 뉴욕한복판에 등장한 괴물인)킹콩을 봉준호식으로 결합한영화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육식과잉의 사회에 대한문제의식을 슬랩스틱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봉준호의 표현에 따르면 깽판의 분위기) 감독자신의 방식대로 파고드는 <옥자>의 장점에도 불구하고무엇인가 아쉬운 지점은 그 이전에 봉준호 영화가 보여주던 장르적 쾌감속에서도 은근히 보여주었던 감독의 날카롭고 잔혹한 시선이 무화됬다는 느낌이들어서일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서의 범인, <괴물>에서의 괴물,<마더>에서 엄마, <설국열차>에서의 열차는 단순히 영화적 소재가 아니라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게되는 힘을 지닌다. 그러한 질문이 영화의 잘짜여진 내러티브와 연결되면서, 봉준호 세계의 완성도를 높이게 되는데, <옥자>에서의 옥자는 단지 생명체 유전자 변형의 문제와 환경문제에 대한 화신으로만 한정되어 버림으로써 영화의 문제의식이확장되지 못하며, 동물과 아이의 우정을 그리는 월트 디즈니적 방식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교훈을 던지는영화에 그치게 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미자의 입장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한 소녀의 성장담일 것이다. 물론영화에서 느끼는 미자의 이미지에 비해 그녀는 아주 어린아이는 아니다.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시내에 나가서남자친구들도 만나고 하라는 대사도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영화가 십대 초반인 미자의 현실적인 (혹은 상징계로 진입하는) 성장담이되는 것은 산골 속에서 현실사회가 어떤 지 전혀 알지 못하던 그녀가 자신의 돼지 저금통을 깨고, 그돈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고, 결국에는 뉴욕까지 가서 자신의 원하는 존재인 옥자를 미란도 CEO와 금붙이 돼지와 교환하면서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연속에서 대부분의 것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산골에서의 삶과 달리, 모든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이상한 나라 속에서의 한 소녀의 성장담  혹은 생존기인 것이다. 심지어그녀는 금붙이 돼지와 옥자를 교환하는 장면에서 영화대사를 갑자기 유창하게 하며 국제화된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거래 속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깨달은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자의 이러한 태도는 <설국열차>에서 자본주의와 계급의 투쟁을 위해 달리는 인물들의 입장과 달리 이제는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는 선언처럼보이기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자>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절망으로 끝나버리는 그의이전 영화에 비해희망을 말하는 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가장 길게 보여지는 마지막 피해자는여중생이며, <괴물>에서 주인공 여중생은 괴물로부터구해지지 못하고, <마더>에서 여고생은 생활고와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자살한다. 봉준호 영화에서 10대 소녀들인여중생, 여고생은 사회의 약자로서 가장 비참한 희생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옥자>에서 여중생 나이로 보이는 미자는 살아남는다. 오히려 의연하게 서울과 뉴욕에서 살아남아 마지막 장면에 집으로 옥자를 데리고 돌아와 할아버지와 식사한다. 봉준호는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자본주의는 더 이상 저항하기 보다는 그저 거기서 살아남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절망적 선언일까? 영화에 대한 전권이 주어졌더하더라도넷플릭스라는 거대자본의 압박에 자유롭지 못했을 <옥자>에이은 봉준호 세계의 새로운 깽판의 귀환이 기다려진다.



<자객 섭은낭>: 무협과 거울이라는 깊은 리얼리즘 images du cinema






아주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극장에는 관객들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설날연휴가 막 끝이 난 직 후 여서인지도 모른다. 극장의 독과점적인 배급의 폭력속에 <검사외전>이 대부분의 극장의 상영관을 차지하고 있기에 <자객 섭은낭>은 개봉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너무나 보기 힘들었다. 작년 칸느 영화제의 감독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시대의 가장 뛰어난 감독으로 여겨지는 후 샤오시엔의 영화를 그나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감사할 따름이었다. 재미있게도 그 자리에 있던 관객들의 절반 정도는 나이가 든 50대이상의 관객으로 보였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젊은 시절에 열광했던 호금전이나 장철의 무협영화를 기대하고왔을 것이다. 하지만, <자객 섭은낭>은 그 시작부터 그들의 기대를 배신한다. 과거의 TV 브라운관 같은 거의 정사각형의 1.37:1 의 비율의 화면으로영화의 대부분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호금전의 영화들은 화면 양쪽 날개가 긴 시네마스코프를 많이 사용했다. 그의영화 속에서 중국의 거대한 공간속에서 이루어지는 협객들의 무술은 마치 중국적 신화의 호쾌함을 만드는 듯 하다. 몽펠리에대학에서 공부할 때 영화와 댄스라는 이론 수업이 있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이 수업에서 담당교수는 주로 중국의 쿵후 영화들 (성룡의영화들까지 포함해서)을 보여주며 그들의 영화속의 무술은 마치 일종의 댄스처럼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중력을 무시하고 공중을 떠다니는무술은 무협의 세계를 하나의 공연적 스펙타클로 만드는지도 모른다. 시네마스코프 화면의 거대한 화면 속에서협객들은 서로 싸우는게 아니라 마치 조화를 이루며 도()의댄스를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37:1 을 화면을 사용한 것을 후 샤오 시엔은 자신이 추구하는리얼리즘 때문이라고 인터뷰에서말했다. 무협의 리얼리즘의 씬들의 연속 속에서 나이 든 관객들의 적지않은숫자가 영화 상영 중 극장을 나가 버렸다. 심지어 무술씬도 별로 없으며, 그들이 생각했던 호쾌한 무협의 신화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실망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후 샤오 시엔의 이러한 화면 비율은 영화 전체를규정한다. 신화로서의 무협영화가 아니라 리얼리즘으로서의 무협영화는 가능할 것인가?





양날개가 검게 지워진 작은 화면 비율 속에서 우리는 영화전체의 공간을 제대로 조망하지 못한다. 그 어둠에 묻힌 보이지 않는 스크린의 공간은 마치 누군가를 죽이러 들어온 보이지 않는 검은 옷의 자객의 공간이기도하겠지만 (이 영화의 일본 제목은 <검은 옷의 자객>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숨겨야하는 섭은낭의 전계안을 향한내밀한 사랑의 감정의 공간이기도 할 것이다. (섭은낭의 섭() 속삭인다는 뜻이고 (이름의 성이지만) ()은 숨다라는 뜻이다. 섭은낭의 주관적 시점으로 커텐의 색깔이 미묘하게 드러나며, 전계안과그의 첩이 있는 장면을 몰래 보는 그 은밀함의 쇼트의 아름다움 !! )  또한 후 샤오시엔 특유의 롱 쇼트와 롱 테이크는 이 영화 속에서도 이어진다. 거울을 보고 춤을 추다가 죽은 난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섭은낭이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는 약간씩 물러나며 그녀를 천천히 쳐다본다. 클로즈 업이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감정을 강요하기 보다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그 감정을 카메라로 감싸안으려는후 샤오 시엔의 미학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물론 뛰어난 색감과 미쟝 센을 통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모든 쇼트들의 아름다움, 수평과 수직을 오가는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그의 방식은 후 샤오 시엔의 미학인 리얼리즘으로 귀결된다.










동시대의 또 다른 위대한 감독인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를 찍는 방식이 설명을 제거하고 마치 대상 자체나 상황을해부하듯 날카롭게 드러내는 차가운 리얼리즘의 영화라면, 후 샤오 시엔의 리얼리즘은 인간에 대한, 자신의 땅에 대한 애정이 스며들어 있는 깊은 리얼리즘의 영화이다. (심지어후 샤오 시엔은 <자객 섭은낭>에서 협객들간의대결장면의 적지 않은 쇼트를 숲으로 가리거나, 롱 쇼트로 보여주면서,그 대결이 가지는 긴장감을 해체하고 인간끼리의 부질없는 투쟁으로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에는 결국 해부 이후의 차가운 시신들이 남겨진다면, 후 샤오 시엔의 영화에는 그럼에도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아직도 따뜻한 피가 도는 인간들의 흔적이 남겨진다. 그래서 <자객 섭은낭>의 섭은낭도 차가운 피의 자객이 아니라 한명의 인간임을, 사랑을 해야 하고 사랑을 받아야 하는 인간으로서 남게 되는 것이다.

1.37:1 의 화면 비율이 우리를 압도하는 비율이 되는 지점은 중국북부의 몽골 근처에서 찍은 풍경이 드러날 때이다. 물을 강조하는 영화였던 <와호장룡>과는 달리, 이영화는 물이 나오는 장면은 단 한 쇼트에 불과하다. 양 날개보다는 위쪽을 강조하는 이 화면비율을 솟아오른산들과 골짜기의 아름다움 속에서 그 의미를 발휘한다. 그리고 자연광과 실제의 자연의 소리속에서 롱 쇼트로찍은 이 장면속에서 거대한 자연은 인간들의 모습을 초라하게 만들며 인간의 역사를 비웃는 듯 우리를 바라본다. 후샤오 시엔의 무협의 깊은 리얼리즘이 실현되는 순간인 것이다. (아름다운 실제 자연의 풍경의 쇼트 후에병풍에 그려진 인위적인 풍경의 쇼트로 이어지는 씬이 나온다. 이 방은 바로 흑마술을 부리는 도사의 방이다. , 그는 자연의 세계가 아닌 인간의 운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인공적 세계에 갇힌 자인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거울의 영화로 끝난다. 현실을 보여준다는 면에서리얼리즘은 결국 거울과 연결될 것이다. 앙드레 바쟁은 마치 거울처럼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현상학적 영화의꿈을 꾸었으며, 그가 지지했던 네오-리얼리즘은 그러한 거울의영화로서의 새로운 리얼리즘의 시작으로 극찬했다. 하지만, 그어떠한 거울도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수 없다. 그 거울의 표면이 아무리 반들거리더라도 현실은 거울에갇혀버리고, 거울에 비치는 순간 현실은 두 개로 분열되기 때문이다. 자신의동족이 있어야 산다는 난조가 거울을 보고 죽은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결국 혼자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거울은현실을 비추지만 거울 속의 현실은 자신의 초라함과 외로움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섭은낭이택한 남자는 전계안이 아니라 거울 만드는 남자였다. 그는 거울을 만들기에 거울의 한계를 아는 자인 동시에, 둘이 있을 때 거울은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삶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아는 자인 것이다.


거울 만드는 남자는 후 샤오 시엔 자신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리얼리즘이아니라 영화라는 거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를, 그녀를, 우리를, 그들을 발견하는 깊은 리얼리즘의 작가로서 후 샤오 시엔은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깊은 거울을 만드는 자이기 때문일것이다. 모든 영화는 이 세계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이 세계의 파편이고, 감독은 그 파편을 조립하는 자이다. 깊은 리얼리즘의 이름으로 후샤오 시엔은 그 파편을 조립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 살아야 할 의미를 관조하게 하는 거울 만드는대가라는 사실은 <자객 섭은낭>에서도 변함이 없다.

위대한 작가에게 경배를 !!









<레버넌트> : 미국의 역사로서의 자연풍경 images du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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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영화는 단순히 하나의 영화적 장르가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던 수많은세계의 나라들에 비해 역사와 전통이 짧을 수 밖에 없는 미국이라는 신생국가가 필요로 했던 국가적 신화의 대중문화적 버전이 서부영화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선과 악의 대비 속에서 선의 승리, 보안관의 악당을향한 총구를 통한 정의의 실현, 미국의 서부라는 미지의 땅에 대한 개척 정신, 가족의 소중함 등등 서부영화는 미국이 필요로 했던 혹은 만들어 내어야 했던 국가의 윤리적 이데올로기를 영화이미지로서 구체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부 영화가유지했던 내러티브의 상투성과 비슷한 분위기의 반복은 서부 영화라는 장르가 헐리우드에서 결국 사라지게 했다. 존포드의 1962년 작 <리버트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미국적 영웅이 총을 사용하는 총잡이가 아니라 법을 사용하는 변호사 (미래의상원의원) 로서 바뀌는 맥락은 서부영화 스스로 부르는 서부영화에 대한 애도가 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부의 총잡이가 사라진 미국영화에서 의로운 변호사는 항상미국의 정의를 드러내는 주인공으로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2000년 대 후반에 들어 사라졌던 서부 영화가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하는듯한 미국영화의 증상은 (예를 들면, 3:10 투 유마, 더 브레이브, 슬로우 웨스트, 더홈즈맨, 장고 등) 중국의 등장으로 인한 세계의 중심으로서의미국의 힘의 약화 속에서, 서부 영화의 주인공처럼 정의를 실현하는 강력한 국가로서 미국의 이미지에 대한노스탤지어적 환타지가 원인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21세기 형 서부 영화가 다른 점은 (그러한 시도가 과거서부영화에서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부의 신화를 제거한 채 서부 영화라는 장르를 영화적 예술의 형식으로이용하고 있으면서, 미국의 진정한 역사로서 서부를 좀 더 리얼리즘의 맥락안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알렉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또한 이러한 경향성에서 멀지 않다. 망가진 몸을 이끌고 미국서부의 거친 자연을 이겨내며 320km를 횡단한 휴 글래스라는 신화적인 실존 인물을 이냐리투 감독은영웅화 하지 않는다. 즉 이 영화의 장점은 영웅담이기 보다는 고생담에 더 가깝기 때문에 서부라는 혹독한자연 그 자체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서부영화에서 자연은 이미지-액션으로서 내러티브를 담아내기 위한 수단적 풍경에 더 가까웠다면, 이 영화 속에서 자연은 초창기 미국의 역사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근원적 풍경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의 적지않은 부분이 캐나다와 아르헨티나에서 촬영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면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자연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그리즐리 곰을 제외하고는 특수효과를 거의 사용하지않았으며, 인공조명보다는 자연광을 사용했고, 내러티브 순서대로영화를 찍어나가며, 디카프리오가 실제 그 자연과 함께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속으로 실제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원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휴 글래스는 인디언 여인과 결혼하여 혼혈인 아들이 등장하며,글래스의 동료에게 살해당한 아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글래스가 끝까지 자신의 여정을 이끌어 나간다는 설정은 실제와 다르다. 말하자면, 이냐리투 감독은 혼혈의 아들을 통해서 미국이라는 원래의땅의 주인인 인디언과 침략자이면서 동시에 개척자인 백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러한 설정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맥락에서 보자면, 멕시코인이면서주로 미국에서 영화를 찍는 이냐리투 감독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복수극이라는 면에서 이 영화는 실패한다. , 거칠지만 광대한 서부의 자연의 모습 속에서 관객이 느껴야 할 복수라는 주인공의 심정은 해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복수극과 생존극 이라는 두 개의 지점의 균형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또한마치 타르코프스키를 따라하는 듯 예술영화 인양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플래쉬 백 속의 새들과 부서진 성당의 이미지들속에서 내러티브라는 측면에서는 뒤로갈수록 갈피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내러티브 구조의 허약함 속에서도 분명히 21세기적 서부영화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는것이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그 압도적인 이미지들 속에서 미국의 역사가 자연의 서부영화라는 틀로서 재탄생하게 되는 면을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쓴 글의 힘 images de la pensee




작년 2학기에 학교의 교양필수로 정해져 있는 글쓰기 강의를 맡게 되었다. 고등학교때 까지 주입식 교육으로만 지내오다가 이제 대학에 갓 입학한 1학년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인문학적 사고와 표현을키워준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강의였다. 하지만, 학기 시작 전 이뤄졌던워크숍에서 적지 않은 기존의 교수들이 해주는 이야기들은 가장 어려운 강의라는 경험담들이었다. 글쓰기의 가장기본적인 기반은 수많은 독서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한 학기라는 짧은 기간 속에서 그러한 기반을 만들어내기가어려울 뿐 만 아니라, 특히 글을 잘 생산해 낼 수 있는 글쓰기의 테크닉을 전달해야 할 것인지, 단순히 글을 잘 쓰기보다는 글을 쓰는 것의 의미와 어떻게 글을 고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강조점을 둘 것인지,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강의였기 때문이다. 내 자신 또한 학위논문도 이미써봤고, 여러 다양한 글들도 써 봤지만, 글쓰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질문과 강의를 많이 해보지 못했기에, 한 학기 내내 여러 가지 고민들을 가지고 학생들과의 글쓰기에 대한 소통을위해 많은 시도도 해보았던 강의이기도 했다.

미국의언어문화학자였던 월터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아직인터넷과 SNS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은 시대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구술성 (orality)와 문자성(literacy) 사이의 언어 문화적 변증법을 가로지르면서, 20세기 후반 이후의 시대인 전자문화의 시대는 구술문화와 쓰기문화가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시대일 것이라고 정확히분석한다. 월터 옹은 문자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1차적 구술문화와는다르게 이미 문자를 통한 쓰기가 보편화되는 시대를 거친 전자시대는 2차적 구술문화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2차적 구술문화 시대는 전화,라디오, 텔레비전 등 구술과 연관이 깊은 기술적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통해서 형성되었으면서도, 그 존립을 쓰기와 인쇄에 힘입고 있는 구술성의 시대라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의글쓰기 과제들을 읽으면서, 이러한 월터 옹의 20세기 후반 이후의 2차적 구술문화에 대한 입장을 더욱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글쓰기의 훈련이안되었기 때문이겠지만, 나와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에 익숙한 문화에서 자란 학생들의 글은쓰기보다는 구술의 가까운 글이 더 많았다. 구술에 더 가까운 글이기 때문에 수준 이하였다라는 말을 하려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21세기의 글쓰기의 또 다른 스타일이라고도볼 수 있는 지점도 있을 것이다. 이메일, SNS 등 기술적 커뮤니케이션매체의 시대에서 구술과 문자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이 양자가 혼재되어 있는 21세기적 증상들을 학생들의글들을 통해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글쓰기의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은 단순히 새롭게 글쓰기가 정의되어야 한다는 질문을 던질 뿐 아니라, 사유의 체계와 인간관계의방식들이 전자적 문화시대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편지나 종이에 글을 쓰던 촉각적인 물질적 글쓰기에서, 사이버 공간이라는 환영적공간속에서의 탈촉각(脫觸覺)적 글쓰기로 변해간다는 지점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스마트폰이 가지고 있는 터치의 기능은 촉각적인 물질적 글쓰기가주던 감각을 전자적으로 대체하는 시도로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기술적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주는 편리함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소통이 가능한 효용성은 분명히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탈촉각적글쓰기가 가져오는 소통의 유령성은, 다른 말로 하자면 존재하는 듯 하지만 부재하는 유령처럼, 현실공간의 상대방의 부재 속에서 접속이라는 기계적 소통을 통해 부재를 존재으로 대치하려는 마술적 혹은 기만적 시도는 오히려 인간의 관계를강화하기 보다는 너무나 가볍게 혹은 피상적으로 만드는 면이 강하다. <파이드로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구술성의 옹호와 문자에 대한 비판이 결국 플라톤의 글로 쓰여져 남겨진 역설처럼, 구술성과 문자성의 서로간의 우위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아무렇지도않게 내뱉게 되는 SNS 상의 구술적 글쓰기 들은 최소한의 생각을 하며 종이 위에 쓰여진 글쓰기와는 분명히다른 것이다.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가장 낯설었던 한국의 풍경중의하나는 카페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도 말을 하기보다는 각자의 스마트폰의 SNS 소통에 집중하던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기술적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유령성이 어떻게 현실공간에서 인간의 관계들의 의미를 해체하는지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혼자 있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기에, 인간관계가 더 넓어진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지만, 결국 그것은 홀로 있음에 대한 일시적 망각의 차원일 뿐이다. 그래서, 언제나 어디서나 접속, 소통가능한 이 시대는 인간을 더 외롭게 만들고, 오히려 고독함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깊은 고민들 속에서, 내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 중에 하나는글쓰기 연습을 반드시 펜이나 연필로 종이에 적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던 강의마지막 날 학생들에게 이 메일이나 SNS로 간단하고 편하게 e 카드나글을 보내기 보다는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에게 짧게 라도 손으로 직접 쓴 카드나 편지를 보내기를 부탁했다. 좋은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종이 위에 자신의 필체로 쓰여진 글들이 얼마큼 아름다운 것인지, 그 쓰여진 글들의 물질성이 어떻게 자기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규정해 갈 수 있는지, 그리고그 손으로 쓰여진 글들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의미 지어질 수 있는지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아무리정성스럽게 쓰여진 이 메일 이나 길게 쓰여져 보내진 SNS 일지라도 그것들을 다시 읽고 간직하는 경우는 찾아보기어렵다. 어쩌면 추억할 수 있고, 되새김질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만질 수 있다는 것이 손으로 쓰여진 글의 가장 다른 점일 것이다. 이 강의를 마치고 내 자신 또한 간직해두었던 예전의 받았던 카드와 편지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글은 재작년에 돌아가신아버지께서 유학시절에 보내주신 두 장의 연하장이었다. 컴퓨터 보다는 타자기에, 이메일 보다는 편지에 익숙하셨던 시대에 사셨던 분이시기에 아버지는 연하장을 보내신 것이었다. 어려운 집안의상황 때문에 유학생인 아들에게 전혀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없는 미안함, 그리고 나에 대한 그리움, 고마움 등이 그의 짧은 글속에서 지금도 움직이며 나의 눈물을 끌어내고 있었다.

언제나접속과 소통이 가능한 기술적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손으로 쓰여진 글의 힘이 주는 그 진정성은 전자적 매체가 가지는 용이함과 소통의 유령성을 언제나넘어선다. 그 짧은 아버지의 글 속에서 나는 아직도 그의 신체적 흔적을 느낀다.SNS의 차가움은 손으로 쓴 글의 뜨거움을 결코 넘을 수 없다.



망각의 이미지들과 깨어남의 이미지들 사이 : 영화 이미지의 가능성 images de la pensee

                                                               
                                    멜리에스 <달나라 여행 (1905)> - 내러티브를 가진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점



<인문예술연구소 웹진의 요청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서구의 역사는 여러가지 시선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요한 역사는 언어와 이미지간의 투쟁의 역사일 것이다. 서구의주류적 사유는 항상 언어적인 입장을 옹호해 왔다. (물론 <파이드로스>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구술언어에 대한 옹호와 문자언어에 대한 혐오로부터 데리다의 문자-글쓰기의 철학에 이르기 까지 구술언어와 문자언어의 투쟁 역시 서구 사유에 있어서 중요한 맥락을 지니고 있지만말이다.) 예를 들면, 미술사는 단순한 이미지의 역사가 아니라이미지가 어떻게 언어-문학적 전통에서 벗어나 이미지 자체로 되어가는지에 대한 역사이다. 고전적 회화는 항상 스토리를 가지는 신화, 성화, 역사화라는 틀에서만 그려졌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가 철저하게 스토리적 이해라는 언어적 환원의 지향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18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본격적인 회화의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던 풍경화는 이런 면에서 끝없이 보수적인 비평가나 회화의 권력자들에게비판받게 된다. 왜냐하면 풍경화는 스토리를 벗어나 드디어 이미지가 이미지로서 이해되는 지점에서 등장하는회화 장르이기 때문이다. 19세기의 위대한 시인 보들레르가 그의 살롱비평에서 풍경화가들을 지지했던 것은아마도 언어를 넘어선 새로운 이미지 (혹은 언어를 넘어선 언어로서의 이미지)로서 등장하는 풍경화의 모더니티를 지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적회화의 끝에 추상화가 있다면 (특히 말레비치의 회화), 추상화는더 이상 언어로서 쉽게 환원될 수 없는 이미지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미지가언어에 대해 벗어나기 시작할 무렵 19세기 후반 영화가 탄생한다. 초창기영화는 말 그대로 이미지 그 자체였다. 항구로 들어오는 사람들, 역으로들어오는 기차들 등등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을 이미지로, 그것도 움직이는 이미지로서 그대로 복제하여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는 순간, 모던예술이 추구하던 리얼리즘을 기계적으로 완성하며, 이미지는 드디어 이미지 그 자체로 존재하기 시작한 역사적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상화라는 이미지의 끝을 본 예술가들은 불안해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미지가 주는 즉물성이라는 폭력성에 대한 불안인지도 모른다. 이런면에서 이미지 자체를 다시 언어로서 철저하게 환원시키는 개념미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미지로서 보여지는것 자체보다는 언어로서 그 이미지를 설명하는 개념이 먼저 존재하는 개념미술이 현대미술의 가장 강력한 시작점이 된다는 사실은 언어와 이미지의 투쟁이다시 시작된다는 의미이기 보다는 이미지를 어떻게 언어와 함께 공존시킬 것인가라는 고민들, 다른 말로하면 이미지와 언어간의 상호적 효과에 대한 고민들이 새롭게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이미지로서 시작된 영화가 내러티브(언어)를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은 상업적인 이유가 더 중요했다. 움직이는이미지 그 자체로서 존재했던 초창기 영화가 주었던 충격과 흥미로움에 더 이상 관객들은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에드윈 포터나 멜리에스로부터 시작되는 스토리로 구성되는 영화의 이미지들은 랑시에르의 말처럼 영화를 역설적인 이미지들로 만든다. 고전적 내러티브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미술의 역사와는 달리, 이미지자체로 시작했던 영화의 역사는 고전적 내러티브를 어떻게 영화이미지를 통해 구성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대량복제로서 영화를 문화산업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비판적 시선을 취했던 아도르노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화가 이미지의 실험을 포기하고 내러티브를 가지게 되는 것은 그러한 문화산업으로서 대중기만의 길로 가기 위한시작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도르노와 달리 영화를옹호하는 입장에 섰던 벤야민의 시선은 다르다. 서구의 역사를 보면, 서구의하층계급까지 대부분이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나 되어서야 가능했던 일이다. 이런 면에서 벤야민은 영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본다. 문자를모르는 하층계급에게 몽타쥬 기법을 통한 이미지의 충격을 통해, 새롭게 그들을 일깨울 수 있으며, 문학적 사회 리얼리즘이 영화를 통해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사유했던 것이다. 하지만, 벤야민의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21세기에 문화산업으로서의 영화는 더욱 더 강화되고 있으며, 영화는그저 상품으로서만 점점 더 간주되어진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암살 (이미지 출처 ohmynews.com)




21세기의 대한민국의상황에서도 그러한 측면은 그리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2015년 한국의 영화관람객수는 총 2 1728 8892명이었다. 인구비율로 하자면 대략 1인당4.3 회 정도 극장을 찾은 것이며, 이것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독서에 집중하는 한국인들은 줄고 있지만, 영화관객은 더 늘고 있다는사실은 이미지로 24시간 세상을 바라보는 스마트 폰 시대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생각해 볼 것인가? 단순히 한국영화의 우수함과한국영화시장의 발전으로 볼 것인가?


미국의 영화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한 때는 바로 1930년대 경제공황 때 였다.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1985)>가 잘 보여주듯이 현실의고통과 괴로움을 잊기 위해 하층계급의 미국인들은 극장으로 향했고, 당시 영화들은 주로 환타지물, 달콤한 연애물이 주를 이루었다. , 영화는 현실을 망각하기 위한 마취제였던 것이다. 아마도 한국의 관객들로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청년실업과 빈부차가 넘쳐나는 헬조선이라고 불리우는 한국의 힘든 경제적, 정치적 상황속에서, 갈 곳 잃은 이들은 그렇게 극장으로 들어가 잠시라도고단한 현실을 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이 새로운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들이 보았던 적지 않은 영화들이 오히려 현실을 망각하기 위한 영화이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였다는 것이다. 2015년의 천만이 넘은 대표적인 흥행작인 <암살> <베테랑>은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친일매국노들의 역사청산과 재벌개혁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이 영화관객을끌어 모은 것이 아닌가? 기껏해야 팝콘을 씹어대며 2시간정도를 보내는 하찮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들은 재창조될 수 있지 않을까? <암살>의 흥행에 불안해 하며 <암살>을 역사 왜곡이라고 폄하한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컬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영화들에대한 관객들의 열망은 어떻게 현실화되어 질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거기에는 끊임없는 담론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유일하게 영화에 대한 진지한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는 <시네21>같은 잡지를 제외하고는 이제 그 어떤 매체도 영화에 대한 담론을 보여주지 않는다. <암살> <베테랑>에 대한 관객들의 환호가 단지 현실에 대한 일시적 대리만족이 아니라, 새로운깨어남의 이미지의 가능성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면 혹은 될 수 있다면 그 자리에는 활발한 담론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나의 가장 작은 습관들이 나의 건강을 망치는 원인이 되듯, 가장 하찮아 보이는 영화의 이미지들이야 말로이 시대를 바꿀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계기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진지한 담론들은 그 가능성의 계기에 대한 촉발점이 되지 않을까?벤야민이 영화에 대해 가졌던 그 기대와 가능성은 아직 한국땅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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