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칸느 영화제에 등장한 고다르의 신작인 필름 소시알리즘 (고다르는 이 영화의 제목을 그냥 소시알리즘이 아니라 필름 소시알리즘으로 언급하기를 강조한다)은 그의 Notre musique의 확장판과 같다. 그리고 좀 더 내러티브를 분해하면서, 다큐멘타리라고도 부를수 없고, 단지 극장판 비디오 아트라고만으로도 부를수 없는 말그대로 고다르적 영화라고 불릴만 하다.
고다르는 마치 영화사의 헤겔이 되려는 듯한 느낌도 우리들에게 준다. 그의 영화의 역사(들)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단지 한명의 영화감독으로서가 아니라 그 영화의 역사를 그 이미지들의 역사를 계속 사유하고 정리해 나감으로서, 영화가 무엇인지 계속 정의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브레송과 고다르가 달라지는 지점이다. 브레송이 시네마토그라프로서 영화를 정의하면서, 다른 예술과 다른 영화의 존재론적 자리를 정의해놓고, 영화를 만들어 같다면, 고다르의 영화들은 항상 현재 진행형의 영화인 것 처럼 계속 영화를 정의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의 영화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화의 역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지의 윤리에 대해서 계속 묻는다. 이런면에서 이미 그는 영화라는 매체의 정체성을 영화 스스로에게만 묻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 에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과연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이 세계를 현현하는 그 이미지가 무엇인지, 그 이미지속에서 드러나느 세계가 무엇인지 그는 묻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도 그냥 소시알리즘이 아니라 필름 소시알리즘이 되는 것이다.




고다르의 고민은 이 영화속에서 유럽에 있다. 유럽통합이후 그 이상적 유럽의 하나됨과 인간적 가치의 실현을 향해 가는 유럽의 현재 자리와 그 속에서 권력과 그 권력이 만들어내는 배치들 그리고 이 유럽연합이라는 장치가 만들어낸 효과들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가 된다. 영화의 첫대사 l'argent, c'est un bien public / comme l'eau / exactement 는 마지막 자막, No comment 으로 이어진다. 호화 여객선이 지나가는 그 바다를 보여 주며, 이 바다같이 끊임없이 흐르는 자본의 흐름, 그리고 석유, 즐기는 인간들, 후설을 읽는 인물, 바디우의 강의, 오데사, 그리스, 팔레스타인, 어느 프랑스의 가족,...서로 연개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 속에서, 그는 유럽과 세계, 그리고 그 유럽이 만들려고 하는 이상주의 로서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적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영화적) 이미지들의 무력감 혹은 의미들을 사유해 낸다. 영화의 죽음이 난무하는 시대에 고다르는 영화를 통해 세계를 사유할 수 있음을 포기하지 않음로서, 하나의 작은 가능성을 열어놓으려는 시도는 끊임없음을 고백하는 듯 하지만, 그의 마지막 자막 노 코멘트는 그 영화적 가능성과 좌절에 대한 80이 된 이 노감독의 마지막 유언과 같이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시대의 고다르의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다시금 영화가 어떻게 세계를 고민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