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알렌 - 미드나잇 인 파리: 클리셰를 사용하는 방법



 






2011년 칸느 영화제의 개막작인 우디알렌의 신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의 예전 영화 맨하탄의 파리버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맨하탄이 뉴욕의 아름다운 흑백의 풍경들로 시작하는 것 처럼,  미드나잇 인 파리 또한 이란 출신의 다리우스 콘지가 잡아낸 노란 빛 톤의 색깔속에서 파리의 풍경들로 시작된다. (다리우스 콘지가 촬영감독이었던 우디알렌의 전작 애니씽 엘스의 노란색 톤의 뉴욕은 이 색감의 분위기 때문에 파리의 노란색 색감과 만난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이라 할지라도, 이미 관광지로 너무나 유명한 파리의 명소들은 금새 클리셰의 이마쥬들이 되어 버린다.  뉴욕이 우디알렌의 고향이며, 그가 이 세계에서 가장 잘알고 사랑하는 자신의 보금자리로서,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뉴욕의 아름다움을 맨하탄에서 대부의 촬영감독이었던 고든 윌리스의 촬영과 함께 꼼꼼이 드러내고 있다면, 파리에서는 결국 우디알렌도 불어를 못하며, 거리를 헤매는 미국인 관광객이 될 뿐 인 것이다.

이런면에서 홍상수의 밤과 낮은 파리에서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상징할 수 있는 클리셰를 완전히 제거 해버림으로써, 낭만보다는 남녀간의 치사한 혹은 귀여운 연애게임이 드러나는 홍상수 월드를 통해, 파리의 기표를 밤과 낮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반면, 우디알렌은 뻔뻔히 파리의 클리셰를 사용하고, 즐기면서, 파리를 우디알렌의 이마쥬들로 바꾸어 간다. 즉, 우디알렌은 세느강, 에펠탑, 루브르 미술관 같은 파리의 너무나 유명한 장소들을 계속 보여주면서도, 그 사이사이 조그만 카페나 골목길에 숨겨져 있을 파리의 역사들, 특히 19세기 후만 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파리가 진정으로 예술가들의 수도였을때의 파리와 예술가들의 모습들을 주인공의 판타지 속에서 능청스럽게 담든다.
즉, 그 시절은 바로 영화가 처음 이 세게에, 그것도 파리라는 도시에 탄생했을 시기 인 것이다. 그래서, 우디알렌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가로지르면서, 단순히 예술가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파리가 얼마나 영화적인 곳인지, 아니 파리가 곧 영화라는 낭만적 도취를 고백하는데 서슴치 않는 것이다. 이제는 삶의 무의미를 끊임없이 뇌까리며, 수다를 떠는 우디 알렌적 시니컬한 유머를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벌써 76살이 된 이 노감독의 판타지로서의 영화에 대한 예찬은 그리 실패한 것 같지는 않다.
파리의 풍경의 클리셰를 여유있게 사용하는 노감독의 자세에서, 삶의 무의미속에서, 삶의 그 순간들을 그저 즐기라는 그의 조언이 들리는 듯 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또한 특별한 것이 아닌, 그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또 하나의 클리셰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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