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렌스 맬릭 - 생명의 나무: 철학이 되려는 이마쥬들


 




영화가 철학이 될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하면, 철학을 말하는 영화가 반드시 좋은 영화는 아닌 것이다. 서스펜스의 대가 히치콕과 모든 장르의 영화를 통달한 하워드 혹스의 영화들이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그 영화들은 그 어떤 영화들 보다 영화를 이루어가는 메커니즘을 뛰어나게 보여주기에 항상 우리에게 중요한 영화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테렌스 맬릭은 피할 수 없이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야하는 사람이다. 원래 철학을 박사과정까지 전공했었고, 하이데거의 독일어 책까지 영어로 번역했으며, MIT에서 철학을 강의하던 그에게 철학이라는 학문은 영화감독이 된 이후로도 피할 수 없는 그의 영감의 기반일 것이다. 그래서 다른 미국 감독들과 구분되는 그의 영화의 진지한 분위기는 마치 철학이 어떻게 영화가 될 것인가? 와는 같은 질문에서 오는 것 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주제인 자연과 문화, 그리고 자연과 우주의 위대함은 생명의 나무에서 더욱 멀리 나아간다. 테렌스 맬릭은 우주의 시작, 지구에서의 생명의 시작을 드러내는 이마쥬들을 가로지르며, 이 이미지들은 50년대의 미국의 한 가정의 모습에 까지 이어진다.
우주를 보여주는, 인간의 시간의 탄생하기 전의 지구의 시간을 보여주는 이마쥬들은 마치 비디오 아트나 살아있는 추상화 처럼 보여지면서, 피사체를 관객에게 멀어지게 하는 느낌 혹은 무한한 시간속에서의 알 수 없는 대상을 거대하게 보여주면서 일종의 숭고미를 주는데 반해, 미국의 한 가정을 보여주는 시퀀스들에서는 반대로 카메라를 대상에 가까이 붙여가며, 관객을 이 가족속으로 파고들게 만들면서, 인간 누구나 홀로 있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에서 자신이 시작되고 만들어짐에 대한 분위기를 강렬하게 만든다.




 





주로 그 가족의 아들인 이제 나이가 50정도 되보이는 건축가인 (즉, 그는 자연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 아닌, 도시라는 인공적인 공간에 건물이라는 인공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숀 펜의 자신의 가족에 대한 기억들로 이루어지는 이 영화는 마치 베르그손의 철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한 생명의 기억전체를 드러내는 순수기억이, 우주의 지속과 어떻게 이어지는데 대한 이미지들이다. 맬릭에게는 가족 또한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그 가족안에서 태어나고, 죽고,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망하는, 그리고 브래트 피트가 연기하는 아버지로 표현되는 모든 원리를 콘트롤하고 제어하려는 거친 힘과 사랑과 포용으로서 표현되는 어머니라는 부드러운 힘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소우주인 것이다.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에서의 우주의 이마쥬와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에서의 물속에서 흔들리는 식물의 모습을 인용한 듯한 생명의 이마쥬들은 가족의 탄생과 죽음과 연결됨으로서, 맬릭은 생명으로서의 인간, 우주라는 시간안에서의 인간과 인간의 기억들을 다시 묻는다. 하지만, 그의 이전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 생명의 나무의 테렌스 맬릭의 욕심은 지나치게 큰 것 처럼 보인다. 그는 영화가 철학적인 것이 되는 그 접점의 긴장감이 주었던 그의 이전의 영화들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그저 영화가 철학적인 것이 되기를 이 영화에서는 원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진지함이 영화라는 매체의 메커니즘을 상실하게 하듯, 비록 이 영화가 칸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지라도, 천국의 나날들이나 뉴 월드에서 보여주었던 그 이마쥬들의 아름다움을 이 영화는 그 진지함속에서 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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