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나날들 - 풍경의 미학과 정치학 사이 images du cinema



며칠전 한국에 맬릭감독이 올해 칸느 황금 종려상을 받은 트리 오브 라이프가 개봉되었지만, 맬릭 감독이 찍은 영화가 이 영화를 포함해 5개 밖에 안되지만, 한국에 정식으로 극장개봉한 것은 씬 레드 라인과 트리 오브 라이프 두 개일 뿐이다.
이런면에서 테렌스 맬릭이라는 이름조차 낯설던 90년대 초반 그의 천국의 나날들이 CIC 비디오로 출시 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기 조차 하다. 아마도 지금의 조지 클루니의 이미지처럼 잘생긴 매너좋은 중년 남성의 이미지로 인기를 끌던 리차드기어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비디오 출시를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출시가 되었다는데 이 영화는 보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보았을 때, 이 영화 이후로 거의 20년을 운둔하던 테렌스 맬릭 감독이 왜 전설이 되었는지를 느낄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는 너무 아름답고도 또한 감정을 묘하게 이끌어 내는 대단한 영화였다. 하지만, 어떤 영화던지 비디오나 디브이디, 컴퓨터로 보았을 때 우리는 아직 그 영화를 본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스스로 이제 막 씨네필의 발걸음을 시작할 무렵, 아직도 많은 영화들을 보지 못했던 나의 상태는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거의 20년이 지나서, 이제 수많은 영화를 보고, 이제는 영화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어서, 파리의 한극장에서 천국의 나날을 다시 보았을때 나는 이 영화가 왜 아름다우면서도 또한 한편으로 꽤나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일단 그 커다란 스크린의 화면으로 보는 그 가을의 추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말이다.

영화의 시작은 엔리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 (이 음악은 지금도 칸느영화제에서 자주 사용된다)이 깔리면 20세기 초반의 미국의 처참한 노동에 시달리던 실제 노동자들의 사진으로 시작된다. 즉, 이 영화는 풍경의 영화이기 이전에 바로 노동자가 주인공인 영화인 것이다. 그리고 첫번째 시퀀스에서 제철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이 사진의 연장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공장을 떠나 그들은 추수밭으로 일을 하러 간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일하기에 그들의 상황은 나아 보이지만, 그들의 노동은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니 역설적으로 그 아름다운 풍경이 그들의 노동을 더욱 아이러니 하게 힘들게 만든다. 즉, 이 아름다운 풍경은 바로 노동자의 시선이 아니라, 바로 이 추수밭의 주인인 지주의 시선인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자연과의 거리감이다. 세잔느가 생 빅트와르 산의 의미를 농민들을 알 수 없다고 할때, 바로 그 농민들에게는 그 산의 풍경의 미학을 느낄 거리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 산의 그저 그들이 노동해야할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천국의 나날들에서의 이 아름다운 풍경을 느끼는 관객은 결국 지주의 시선으로 자연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관객은 그 주인공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즉, 바로 풍경을 다루는 맬릭의 방식이다. 이 풍경의 미학과 정치학을 아우르면서, 천국의 나날은 단지 아름다운 영화가 아니라, 노동자의 현실속에서 자연의 의미, 그 자연과 문화가 부딪히는 방식, 계급이 만나는 방식을 다룬다. 그래서, 지나친 형이상학의 과잉으로 인해, 맬릭의 사유를 담아내지 못하는 트리 오브 라이프의 이미지의 무능함보다는 소박하지만, 그 풍경속에서 인간, 자연, 정치를 관찰하는 천국의 나날들의 맬릭의 시선이 훨씬 아름답고 의미깊어 보이는 것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