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의미




9년만에 돌아온 서울의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예전과 다른 여러가지 모습을 느끼게 된다. 특히, 그 많던 건물상가에 있던 소규모 교회들은 예전보다 많이 사라졌지만, 오히려 꽤 큰 건물을 가진 교회들이 여기저기 더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의 비리들 때문에 개신교 신자들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큰 교회는 더 생겼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것은 마치, 소규모 가게들이 거의 다 없어지고, 대형마트들이 싹쓸이 해버린 현상들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성장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항상 맞물려 있다. 박정희 정권시절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바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교회안에서의 축복의 의미는 결국 경제적 부의 축적과 다른 말이 아니었으며, 부를 축적한 교인들의 많은 헌금은 오히려 교회의 축복이 된 것이다. 이 순복음 교회가 담임목사와 그 아들들의 비리로 와해 직전에 있음은 위태롭게 쌓아올린 한국경제의 상황과 무너져 가는 한국사회의 상징성을 띄는것 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역설은 경제가 어려워 질 수록 종교는 더 잘 되는 장사가 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믿을데 없고, 기댈때 없는 하층계급에게 유일한 희망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신이 부여하는 기적만으로 여겨질 때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종교에, 교회에 올인 하기 때문이다. 이번주 며칠동안 이어진 한국사회안에서 교회의 사건들, 자신을 구세주로 만들며, 딸과 어머니까지 성폭행한 목사나 청소년들을 앵벌이까지 시키며 착취했던 목사들은 아직도 유효한 교회의 이상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국교회의 축복만능주의에 항상 함께 가는 담임목사에 대한 복종주의가 결합되어 있다. 교회는 교인들의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의 개인의 것이 되며, 그의 설교는 현실을 잊고 교회에만 의지하라는 심적 마취제의 역할만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때문에 개신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한 사람도 꽤 있다고 말해지지만, 미안하지만 카톨릭도 별 다를 것은 없다. 내가 프랑스에 있을 시절 어느 카톨릭 전문 기자의 사설에 따르면, 로마 카톨릭의 엄청난 파워로 부터 이어지는 카톨릭의 권력은 자신의 비리를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통제하는 부서가 있을 정도로 언론을 장악하고 있기에, 언론에 많이 노출이 안될 뿐이다. 
 종교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어 질 수는 없다. 물론 누구나 인간이라면 죽어야 하는 인간의 공포가 인간의 죽음을 위로하고 죽음에 맞서기 위해 종교가 탄생되었겠지만, 어떤 종교이든 인간의 유한성 속에서, 정신적인 차원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여 죽음의 허무함을 넘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입장에서는 종교는 분명히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항상 종교의 본질보다, 종교라는 제도이다. 인간은 죽음을 바로 자신앞에 목도할 때 누구나 "종교적"이 된다.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본질로서 이 종교적인 자세인 것이다. 삶의 허무함에 대한 극복을 종교라는 제도나 그 종교라는 제도에서 파생한 종교인으로 부터만 찾으려 할 때 오히려 종교적인 태도는 사라진다. 철학자 김영민의 책 제목, " 신없는 구원, 신앞의 철학" 처럼, 비판적 이성으로서의 철학적 사유와 인간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 감성으로서의 종교적 태도가 항상 긴장을 이루는 삶은 가능할수 있을까?

= 위에 인용된 이미지는 작가 차주용의 사진으로서, 작품에 대한 권한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덧글

  • bergman님께 2015/07/22 19:04 # 삭제 답글

    한 종교 신문에서
    http://dailywrn.com/sub_read.html?uid=6751&section=sc36
    bergman님의 글을 올렸네요.
    아시고 계셨는지요?

    그 기사에서 제가 쓴 글도 아닌데 제가 쓴 것처럼 제 블로그 주소가 올려져 있어서 말입니다.

    저 종교신문에서 bergman님의 글을 사용하겠다고 요청하신 적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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