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 한국적 케이퍼 무비의 가능성 혹은 한계 images du cinema



최동훈 감독은 아예 자신의 영화사를 케이퍼 필름이라고 할 정도로 케이퍼 무비의 매력에 푹 빠진 듯 하다. 케이퍼 무비란 일종의 필름 느와르에 속해있는 장르라고 할 수 있지만, 범죄의 과정과 그 성공과 실패 과정을 좀 더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묘사할때 케이퍼 무비가 된다. 일반적으로 1950년작인 존 휴스턴의 아스팔드 정글을 케이퍼 무비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는데, 큐브릭의 킬링, 줄스 다신의 리피피 등을 거쳐, 소더버그의 오션스 일레븐에 이어질 정도로 케이퍼 무비는 계속 이어진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과 같은 영화는 보석이나 돈이 아닌 꿈을 훔치는 새로운 스타일의 21세기적인 케이퍼 무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냥 단순한 윤리적 잣대를 가지고 케이퍼 무비를 표현하자면, 케이퍼 무비는 나쁜 영화이다. 즉, 관객은 도둑인 혹은 사기꾼인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범죄 행각에 동조하고, 그 도둑질 속에서 쾌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된 시절의 케이퍼 무비의 주인공일수록 비극적으로 죽으며, 불행한 결말을 만들어 낼때 결국 케이퍼 무비는 결국 악인은 처벌받는다는 미묘한 도덕적 논리가 깔리는 사회적 관리의 영화가 되지만, 동시에 도둑인 주인공의 죽음은 이상한 비장감을 만들어 내며 그 쓸쓸함속에서 다시 느와르 영화의 분위기에 합류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으로 넘어올수록 이러한 비극성은 케이퍼 무비에서 많이 사라지며 그 스타일을 바껴진다. 예를 들면 오션스 일레븐은 여러 헐리우드 스타들이 흥겹게 도둑질하는 마치 뮤직비디오 같은 케이퍼 무비이면서, 도둑질의 성공과 멤버들간의 충돌없는 케이퍼 무비의 완벽한 환타지가 된다. 

 '도둑들'은 이 뻔뻔한 제목처럼, 대놓고 케이퍼 무비를 표방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 스스로가 말하듯 오션스 일레븐의 한국판은 아니다. 그가 좋아한다는 쓸쓸한 케이퍼 무비인 리피피의 영향속에, 올해 41살인 그가 십대 이십대 시절 즐겼을 홍콩 액션영화의 스타일이 버무려진 또 다른 케이퍼 무비인 것이다. 홍콩과 마카오를 배경으로 도박장 장면과 이어지는 임달화의 총질 장면은 첩혈가두, 지존무상, 영웅본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며, 펩시를 사이에 둔 뽀빠이와 마카오박의 관계는 그림 도둑질을 중심으로 한 여자에 대한 두남자의 애증이 코믹하게 드러나는 종횡사해의 장면을 되새기게 한다.
 케이퍼 무비가 다른 영화장르와 현격히 달라지는 지점은 치밀한 씨나리오 구성을 통해 범죄 장면과 그 범죄와 성공장면을 촘촘하고 설득력있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도둑들은 그 범죄장면은 그렇게 설득되지 않는다. 특히, 가짜보석과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수시로 나타나는 플래쉬 백은 분명히 내러티브의 긴장감을 때때로 흔들어 놓고 지나친 설명이 된다. 하지만, 여러명의 주인공을 가지고도 그들의 씬들의 적절한 배치는 인물들의 특징을 놓치지 않는 영화의 흥미로움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범죄장면의 촘촘함의 부족을 빌딩건물에서의 액션장면을 가지고 잘 메꾸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오히려 리피피나 아스팔트 정글보다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과 더 가까운 영화인 것이다. 일종의 케이퍼 무비임에도 불구하고 도둑들의 범죄장면은 쏙 빼버린채, 서로속고 속이는 그들의 긴장관계와 그 폭력속에서 나오는 이상한 경쾌함이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것 처럼, 도둑들은 멤버들간의 감정의 변화와 이입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케이퍼 무비로 시작했지만, 결국 뒤로 갈수록 멜러 드라마로 끝나기 때문이다. 멜러 드라마적 분위기로 인해 도둑들을 한국적 케이퍼 무비라고 말하기는 쉽지는 않겠지만, 차갑고 비장감이 넘치는 서양의 케이퍼 무비와는 다른 멜러 드라마적 케이퍼 무비속에서 한국관객은 확실히 더 반응한 것 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흥행코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오락영화이던 예술영화이던 근거없는 도덕적 잣대를 대는 관객들이나 공적기관에게도 이 영화의 대사처럼 도둑놈 것을 도둑놈이 훔치는 것이 어때 라는 도둑질의 정당화 가능성, 그리고 도둑들보다 더 나쁜 악인인 웨이홍의 등장은 그들의 도둑질의 정당화를 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도둑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실제로 나쁜놈은 없다는 식의 구조는 사뭇 진부하다. 정말 악질인 주인공에 관객이 몰입하기가 쉽지 않음을 감독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캐릭터는 그렇게 나쁜놈들은 아니며, 정말 나쁜놈인 웨이홍에 대립하는 선과악의 구조로 바뀌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케이퍼 무비가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의 미묘한 선을 '도둑들'은 없애면서 관객이 소화하기 쉬운 케이퍼 무비로서 바꾸어 놓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오락영화로서의 장점과 한계인 것이다.
케이퍼 무비의 스타일은 더욱 늘어날 것 같다. 얼마전 개봉한 한국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또한 시대가 바뀐 코믹한 케이퍼 무비이기 이다.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더욱더 늘어가는 신자유주의의 극대화된 자본주의 시대에 부자-악인의 것을 훔치는 이러한 식의 케이퍼 무비는 관객의 쾌감을 더욱 자극하겠지만, 영화는 영화일뿐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케이퍼 무비가 21세기 더욱 많아진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가지지 못하는 자의 미래에 대한 심리적 공포에 대한 영화적 대리 배설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퍼 무비는 그래서 항상 약자의 영화인 것이다.

덧글

  • 2012/08/09 20:57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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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13 12:39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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