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 – 비정치적 대통령에 대한 환영 images du cinema



이제 대선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왕이 주인공이 된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은 꽤나 정치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이 영화가 실존 왕이었던 광해군을 직접적으로 영화의 소재로 삼은 것은 그리 의미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의 관심사는 광해군이 진짜 뛰어난 왕이 었나 폭군이었나 하는 문제는 그리 관심 갖지 않고, 우연히 왕이 된 평민이 벌이는 정치적 혹은 인간적인 유희가 그 주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마지막에 자막으로 나오는 유일하게 중국을 비판하고, 백성을 위한 조세개혁을 하려고 했다는 왕이었다는 식의 삽입은 효력이 없다. <후궁>에서처럼 알 수 없는 한국의 알 수 없는 어느 시대를 설정하였더라도 이 영화는 별 지장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가지고 오는 가장 큰 흥미로운 점은 평민이었던 자가 (정치적 계략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왕이 되었기에 더욱 평민의 고통과 그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에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고 노력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나 국제정세적 이해관계에 대한 고민 없이 자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고 한다는 환타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비정치인이야 말로 정치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정치적 환타지인 것이다.

2012년 대선의 흥행요소는 안철수가 그 핵일 것이다. 만일 문재인과 박근혜 라는 2인 경쟁체재였다면 이전에 대선의 분위기와는 그리 많이 다르지 않겠지만 (물론 여기에는 노무현과 박정희의 그림자에 대한 대리전이라는 면도 있지만), 안철수 라는 인물이 주는 상징성 때문이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이 안철수를 마치 정치적 메시아처럼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까 한국사회는 올바른 정치를 위해 역설적으로 비정치인이 필요한 것이다. 비정치인이 정치를 할 때 정치가 올바로 될 수 있다는 이상한 모순 속에서 안철수는 등장한다. <광해>는 마치 그러한 2012년 대선의 모순에 대한 (전혀 의도하지 않은) 영화적 알레고리 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광해>와 비슷한 주제의 영화인 구로자와 아키라의 <카게무샤>는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진짜 장군의 모습으로 점점 변해가는 가짜 장군은 결국 비극을 맞이 하게 된다. 항상 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진짜라는 것 자체가 이미 텅빈 기표이기 때문이다. 정치란 결국 여러 개의 가짜중 결국 이게 진짜라고 우기는 게임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광해>는 어찌됬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최소한 이 가짜 왕은 그 주변 인물들과 신하들에게 감동을 주고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가짜 왕을 무시했던 도승지 역시 마지막에 그에게 고개를 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영화는 그래서 환타지로 머문다. 현실에 없는, 백성의 고통과 마음을 이해하는 인간적인 완벽한 왕 혹은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환타지 만을 줌으로써 이 영화는 만족한다. 안철수라는 인물은 이 인물에 대해 평하기 이전에 이미 대중에게는 하나의 환타지 일 수 밖에 없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안철수가 누군지도 잘 모르던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높게 평가하며 대통령 후보로 까지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것은 무엇보다도 무릎팍 도사와 힐링 캠프이기 때문이다. TV 오락프로그램은 아무리 시청자에게 감동을 준다 하더라도 시청률이 떨어지고 광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여지없이 종방되어 버리는 자본주의적 상품이다. 안철수 스스로가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 이 프로그램을 이용했다고는 생각할 수는 없지만, 대중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에 대한 이미지를 키워왔고 대통령 후보로 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한국정치는 환타지를 만들어내는 미디어 정치일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프로그램들이 만들어내는 환타지는 현실의 이데올로기를 숨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결점 없는 이 순수한 비 정치인으로서 안철수가 대선 후보로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더 이상 비정치인이 아니다. 안철수가 대통령후보로서 불려져 나온 (혹은 스스로 나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가 기존 정치인들과 다른 비정치인이라는 사실이지만, 이미 그가 대선후보로 나온 순간 그는 정치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환타지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광해>의 진정한 왕처럼 보이던 가짜 왕은 결국 궁을 떠나 사라져 버려야 하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정치인으로서의 안철수를 평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정치인 안철수는 그가 비정치인 안철수 였기 때문에 요청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정치적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는 <광해>는 분명 2012년 대선의 하나의 풍경이며, 영화는 결국 대중이 원하는 (정치적) 환타지가 될 때에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예증인 것이다.



덧글

  • 쁘띠뜨 2012/10/15 12:07 # 답글

    어제 보고왔는데 좋은 분석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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