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 의미없음의 의미 images de la pensee

                                                    검은 사각형 1915년

현대 그림에 대한 전 이해나 예술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20세기 이후의 미술관에 가면 주로 하는 말들은 비슷하다. "도대체 이 그림은 무엇을 그린건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런 건 나도 그리겠다"등등 난해감과 당혹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반면, 그림꽤나 보고 미술에 대한 책 꽤나 읽은 사람들은 이런 작품들 앞에서 나름 이해하는 듯 열심히 작품을 바라다 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대의 특히 말레비치와 같은 20세기 초반의 화가들이 바랐던 것은 오히려 후자의 먹물든 사람들의 깊이 있는 듯 하던 자세가 아니라, 전자의 반응일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결국 이 화가들이 바랐던 것은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음 그 자체로 이르는 것이야 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했던 인상주의가 회화에 있어서 서사를 점점 해체해 버리고, 그 이후 이어지는 세잔이 인간의 원초적 지각을 그리면서, 대상의 형태가 오히려 의도와는 다르게 해체되어가고, 세잔을 이은 (혹은 오해했던) 입체주의 화가들이 분석적 입체주의를 통해 점점 재현적 의미로서의 회화가 무너지게 되면서, 결국 말레비치 같은 화가들에 의해 이제 회화는 무엇인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되어 회화가 회화 스스로서 존재하게 되는 예술을 위한 예술까지 가버린다. 영원한 철학의 주제일 수 밖에 없는 주체와 객체의 질문은 회화에서도 계속되는 질문이다. 회화가 대상에 대한 재현에 머무를때, 항상 회화는 결국 그 재현하는 대상에 귀속될 수 밖에 없다.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은 이러한 회화의 유약함에 대한 저항이다. 대상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야수파와 표현주의), 그 대상을 넘어서기 위해서 회화는 자기지시적인 회화를 위한 회화자체가 된다. 즉, 회화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때 회화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가지는 역설 즉 의미없음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말레비치가 말하는 이 절대주의로서 이 검은 사각형은 20세기의 이콘화로서 숭고적 예술의 이미지로서 설명되지만, 회화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때 회화는 과연 이제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숭고적 예술은 결국 철저한 예술적 허무주의의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말레비치가 그린 이 검은 사각형은 재현적 회화의 끝, 즉 더 이상 회화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한 선포와 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절대적 추상의 이미지에서 말레비치는 불안해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재현적 회화의 끝에서 머무는 것이 이나라, 다시 재현적 회화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 토르소 1933년


약 20년 뒤에 그려진 말레비치는 '여성 토르소'는 '검은 사각형'에서 보여주는 그 재현을 넘어서는 급진성과 회화를 회화로서 존재하려는 그 강력한 의지가 사라진 듯 보인다. 물론 소련정부의 여러가지 압박들이 말레비치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치 않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의 경력 초기에 영향을 받았던 입체파 그림에서 처럼, 대상을 단순화하였지만, 누구나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풍경에 서있는 어느 인물임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왜 일어난 것일 까? 미술사적으로 찾아보면 그 답변이 나올수 있을지 몰라도, 예술가의 작품의 변화는 그리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닐것이다. 재현적 회화의 끝을 보였주면서도 그는 결국 재현적 회화로 어느정도 돌아온 것 처럼 보인다. 그의 절대주의 미술이 가지고 있었던 그 대상을 넘어서는 철저한 의미없음은 결국 다가설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어떠한 이미지를 보면 분명히 무엇인가를 떠올린다. 그림의 제목그대로 이 그림이 그저 '검은 사각형'이 되려고 해도, 항상 '검은 사각형' 이상의 의미를 그림을 보는 자는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절대적 추상으로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았지만, 예술사적 지식이 없는 관객이라도,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이 검은 사각형앞에서 무엇인가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광활하게 펼쳐지는 검은 우주의 공간? 꺼져 있는 TV? 대상을 보고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는 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결국 그 아무 대상도 의미하지 않음을 통해, 그 의미없음을 통해 회화의 절대적 상태를 완성하려 했던 그 시도는 실패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절대적 추상미술을 거쳐, 평면적 회화가 거의 끝이 나고, 다다이즘을 통해 예술이 예술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행위예술이 되고 점점 개념미술이 되어갈때, 그 예술의 틈에서 느껴지는 깊은 허무주의는 성취될 수 없는 그 의미없음의 의미에 대한 이미지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덧글

  • 에반 2012/10/21 01:30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ㅎ 말레비치의 그림은 전공자들에게도 어렵다고 악명이 자자하죠 ㅎ 사실 미술의 재현으로부터 독립은 참 여러가지 방향으로 시도되었습니다만..사실 그런 시도자체를 대중들이 모르고 "저런건 나도 그리겠다"라는 반응이 나올 때가 많죠 ㅎㅎ 잭슨폴록이나 이브 클랭도 그렇구요 ㅎ
    사람들은 한 마디의 명쾌한 설명으로 이해하길 바라는데, 사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게 천재인듯...
  • 김서윤 2013/05/13 13:35 # 삭제 답글

    말레비치에 대해서 공부 하고 있었는데 개념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을 참 잘쓰시네요. 감사합니다. ^^
  • cjstk 2013/11/04 01:21 # 삭제 답글

    현대예술은 모든분야에서 죤 케이지의 영향을 받습니다.
    최소화 간소화 하는작업
    문학에서 스토리 제거작업
    미술에서 선과 색채를 제거하는작업
    영화에서 대사 제거하는작업
    음악에서 음을 제거하는 작업
  • 낙서 2018/06/18 16:54 # 삭제 답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를 엑스레이로 살펴본 결과 동굴속에서 싸우는 니그로라고 작가가 적어놨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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