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스카이폴 – 정리해고시대의 첩보원 images du cinema



시작 된 지 50주년이 된 제임스 본드 씨리즈는 이제 다시 씨리즈를 시작하려는 듯 보인다. 제임스 본드 씨리즈를 규정하는 화려한 액션은 나름 여전하지만 본드걸도 잠시 나오다 바로 사라지고 대단한 특수한 무기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신 등장하는 것은 2개의 그림이다. 2개의 스카이 폴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장악한다.

붉게 타오르는 배경으로 무너져 가는 배와 풍경을 보여주는 터너의 그림과 눈동자 없는 슬픈 여인을 보여주는 모딜리아니의 그림이다. 아마도 이것은 액션보다는 (특히, 가족간의) 인간간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멜러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던 감성파 감독 샘 멘더스 덕분일 텐데, 이 두 그림은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쓰러져 가는 전투함 테메레르를 그린 터너의 그림은 트파팔카 해전을 영국의 승리로 이끈 넬슨 제독 때의 전투함이 이제 시대가 다해 더 이상 쓸모 없어 지자 폐기되는 그 순간을 하루가 끝나는 순간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시대가 저물어 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이제 50주년을 기점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제임스 본드의 운명으로도 보여지며, 샘 멘더스는 이 그림의 붉은 노을의 분위기를 차용하여, 이 영화의 마지막 액션 씬에서 스코틀랜드의 거대한 풍경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붉은 색이 주로 이루는 배경의 모습은 터너의 풍경화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처럼, 그전의 씨리즈와는 다른 센티멘탈한 제임스 본드의 액션을 만들어 낸다. 또한 제임스 본드가 쫓아다니는 테러리스트가 어느 인물을 멀리서 암살할 때 범죄조직을 통해 그 인물이 보던 그림은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이다. 2010년 파리 시립 미술관에서 도난된 이 그림을 보여주며, 마치 이 영화에서의 조직이 이 그림 도난 사건에 개입된 것 인냥 샘 멘더스는 이 그림에 대한 조크를 던지면서도, 이 그림속의 여러 번 모딜리아니의 모델이 되었던 루니아 체호우스카의 슬픈 모습은 이 그림 옆에 서있던 영화 속에서 곧 바로 사라질 본드걸 이나 이 영화 마지막에서 드디어 사라질 여성국장인 M 의 마지막에 대한 슬픈 예언 같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샘 멘더스의 자신이 만든 제임스 본드 씨리즈를 그 전 씨리즈와 나름 차별화 하지만 제임스 본드 씨리즈는 결국 제임스 본드 씨리즈일 수 밖에 없다.









원래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이 씨리즈이기에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신자유주의가 세계로 점점 퍼지는 지점에서 제임스 본드 씨리즈는 대단한 악당을 만들기가 어려워 졌다. 미디어 재벌이나 석유 재벌, 이념이 아닌 돈을 노리는 테러리스트등이 제임스 본드의 악당으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점점 한계를 느꼈는지 데니얼 크렉이 제임스 본드가 된 이후로 그전부터 서서히 등장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가 좀 더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것은 첩보원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것 자체가 하나의 액션이 되어버린 제이슨 본 씨리즈의 영향도 있겠지만, 이제 50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온 노장 첩보원 씨리즈의 자신의 길을 묻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제임스 본드의 스코틀랜드 고향 집에서 액션이 벌어진다는 사실은 제임스 본드가 자라난 시원으로서의 그의 고향의 집을 태워버리면서 이제 새롭게 씨리즈를 다지려는 다짐처럼 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첩보원이라는 철밥통 직업과 같아 보이는 영국 공무원도 정리해고의 시대가 온 것 처럼 나타난다. 영화전체를 계속 가로지르는 대사는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첩보원 일을 그만 두라는 말이다. 그것은 M에게도 해당되고 제임스 본드에게도 해당된다.



 

다른 제임스 본드 씨리즈와 다르게 스카이 폴은 처음부터 제임스 본드를 죽여놓고 시작한다. 중요한 기밀을 빼앗은 테러리스트와 기차 위에서 육탄전을 벌일 때, 또 다른 여자 첩보원은 제임스 본드와 테러리스트가 엉켜있어서 분명히 멀리서 정확히 저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M의 명령에 의해 저격을 실행하고 이 총탄에 제임스 본드는 맞게 되고, 물속으로 추락해 사라진다. 하지만, 역시 불사신 제임스 본드는 살아 돌아 와서, 다시 MI6 정보국으로 돌아와 M앞에 선다. 바로 이 지점이 제이슨 본 씨리즈와 달라지는 지점인데, 제임스 본드는 M에게 왜 자신을 쏘게 했냐고 물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임무로 돌아간다. 이 영화에서 자신의 숙적이되는 실바가 왜 계속 지금도 첩보원으로 힘들게 일하냐고 하자 제임스 본드는 « 약간의 애국심 »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영화마지막 M이 제임스 본드에게 유언처럼 남긴 영국깃발을 두른 조그마한 영국 불독 미니어쳐를 통해 은유된다. 영화 중간에도 이 미니어쳐는 자주 등장하는데, 이제 첩보원에게 애국심이란 그저 이 미니어쳐 만큼이나 책상위를 장식하는 액세서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까 냉전이 끝난 이 시대에 첩보원이라는 일은 그리 거창한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직업일 뿐인 것이다.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 한물간 제임스 본드는 자신의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하는 샐러리 맨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그는 기본 체력과 지능테스트도 못거치는 퇴물이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숙적으로 등장하는 실바 또한 첩보원이다가 퇴출된 인물이다. 그의 M과 정보국에 대한 보복은 마치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당한 회사원의 복수로도 보인다 (바로 이러한 지점들이 얼마 전 개봉한 한국영화 회사원과 스카이 폴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반면 제임스 본드 또한 퇴출되어야 할 첩보원이 된 것이지만, 제임스 본드는 그래도 50년을 버텨온 그의 경력덕분인지 계속 살아남는다. 그래서 이 퇴물이 된 제임스 본드를 위해 스카이 폴 씨리즈는 복고풍으로 돌아온다. 머니페니가 다시 돌아오고, Q가 돌아오고, 아날로그 적인 무기들이 돌아오고, M은 다시 남자로 바뀐다. 역설적으로 제임스 본드 씨리즈가 보수적 일수 밖에 없는 것은 이제 정리해고 되어야 할 첩보원은 사라지지 않고 시대를 다시 올라가서 그를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는 것이다. 제임스 본드 씨리즈가 항상 인기가 있었던 것은 그 시대를 앞서는 액션과 무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지만, 현대적인 제임스 본드가 되는데 한계를 느낀 제임스 본드 씨리즈속에서, 스카이 폴은 오히려 복고풍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이 복고풍적 분위기에서 제임스 본드의 투철한 애국심이 다시 돌아올지 확실치 않지만, 이제 밥벌이 하기도 벅찬 정리해고 시대의 첩보원이 이제 정보국이라는 회사에서 퇴직 당하지 않고 어디까지 버틸지 우리는 궁금해지는 것이다.

 

 


덧글

  • 잠본이 2012/11/04 11:49 # 답글

    멋진 감상 잘 읽었습니다. 그림을 잘 몰라서 신경을 안 썼는데 저런 세심한 의미가!
  • rus in urbe 2012/11/08 08:23 # 답글

    모딜리아니 그림과 불독 미니어쳐에 대한 해석이 새롭네요. 청문회 신에서 M이 읊는 테니슨의 <율리시즈>도 터너의 그림과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 bergman 2012/11/10 13:26 # 답글

    맞습니다. 늙은 왕 율리시즈가 동료들에게 다시 모험을 떠나자는 테니슨의 율리시즈의 한 부분을 M이 읽는 부분은 상징적이죠. 충분히 터너의 그림과 테니슨의 율리시즈가 스카이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터너나 테니슨이나 낭만주의와의 관계와 깊은 사람들인데, 다른 제임스 본드 씨리즈와 좀 다른 스카이 폴의 전체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있는 한 시대가 가는 느낌에서 오는 멜랑콜릭한 분위기는 분명히 이 두 명의 낭만주의적 작가들의 이미지에서 이미 온다고도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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