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 단지 인간 구원의 드라마 images du cinema


이 영화는 두 가지 이중적 부담을 안고 있는 영화이다. 그것은 빅토르 위고의 원작이 가지고 있는 무게이고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가지고 있는 유명세이다. 이 두 가지 부담을 영화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이 영화는 이 두 가지 부담에 맞선다기 보다는 피해가는 방식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이 뮤지컬의 제작자인 맥킨토시가 참여하였더 하더라도 우리가 보는 것은 뮤지컬이 아니라 영화이다. 뮤지컬의 장점과 배우들의 노래를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서 실제 라이브의 배우들의 노래로 이 영화가 만들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듣는 것은 뮤지컬 라이브 무대의 배우의 실제의 노래가 아니라 어찌됬던 녹음된 그들의 목소리인 것이다. 이러한 부담을 아는지 이 영화는 무대 전체를 보여주는 롱 샷에서 시작되어 중간 샷 정도에서 흘러나오는 일반적인 뮤지컬 영화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오히려 배우의 클로즈업에서 배우들의 솔로곡 들을 자주 보여주고 들려준다. 영화와 연극을 분리 시킬수 있는 영화의 중요한 장치가 클로즈업 이다 하더라도 배우의 노래와 지나친 클로즈업의 사용은 관객에게 부담감을 준다. 특히, 이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클로즈업은 영화가 표피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의 정치적 배경을 삭감시킨다. 다시 말하면, 계속적인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정치적인 시대 (모든 시대가 다 정치적 일수 밖에 없지만) 시대를 사는 기구한 남자 장 발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 발장과 그의 주변인물에 삽입된 시대를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정치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이 영화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배경으로서의 적절하게 정치적 배경만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러한 맥락은 이 영화의 감독 톰 후퍼의 영향이 크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던 그의 전작 킹스 스피치는 분명 정치적인 소재일 수 밖에 없는 영화였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지배자의, 통수권자의 말 parole 은 항상 피지배계층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굳이 히틀러의 화려한 연설을 떠올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말을 더듬는 영국의 왕이 연설을 곧 잘 하는 왕으로 변하는 과정은 그의 발화를 통한 권력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정치적으로 작동하게 되느냐에 대한 중요한 정치적 소재가 될 수 있었지만 그는 이 영화를 마치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만들어 버린다. 레미제라블 또한 이러한 면에서 같은 맥락을 지닌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인간 구원의 드라마로만 포장되면서 당시의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은 그저 영화의 배경만이 될 뿐 인 것이다. 비참한 삶이 주는 무게로 인해 매춘부가 되어 버린 팡틴이 부르는 처절한 삶의 비가인 I dream a dream 이나 영화에서 혁명의 노래로서 나오는 Do you hear the people song? 을 우리가 이 영화에서 들을 지라도 그 노래들은 탄식의 노래이며, 단지 정치적 응원가로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살아있는 철학자중 영화를 가장 진지하게 사유하는 랑시에르는 그의 책 영화의 틈 Les écarts du cinéma 에서 영화의 정치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다. “영화의 정치란 없다. 감독들이 « 정치» 라는 단어의 두 가지 의미가 서로 맺어지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독창적인 형상들figures이 있다. 이 두 가지 의미에 의해서 우리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픽션과 특별한 의미에서의 영화적인 픽션을 규정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영화가 말하는 것으로서의 정치운동 혹은 충돌의 이야기, 고통의 상황 혹은 부당함의 상황에 대한 폭로와 예술적 방식의 적합한 전략으로서의 정치가 있는 것이다.” 영화의 정치가 없다는 그의 단호한 말은 마치 영화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영화가 정치를 보여주는 방식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는 자본주의적 장치이며, 항상 상품으로서의 운명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영화의 정치를 노력하는 장 마리 스트라웁이 존재하지만, 영화적인 픽션을 보여주는 그의 영화를 인내하며 영화의 정치를 영화관에서 교육받을 관객들은 많지 않으며, 오히려 그 교육을 이미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의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오는 역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의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정치를 깨닫는 것이 필요한 관객은 그 영화관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픽션을 보여주는 대중영화에서의 영화의 정치가 더욱 중요해 질 수 있다. 레미제라블의 500만 관객이 넘는 대단한 성공을 문재인을 지지했던 48%의 유권자들이 느낀 패배감에 대한 힐링으로서 분석하는 판단은 상당한 오류로 보여진다. 과연 레미제라블이 보여주는 그 혁명의 실패의 상황에 대해 이들 유권자들이 감정을 이입을 실지로 했을지 의문스러우며, 오히려 레미제라블이 가지고 있는 적절한 스케일,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의 출연,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영화화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적당하게 양념으로 깔린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이 주는 진지함이 주는 적절한 영화의 무게감이 교양있다고 생각하는 관객들까지 모아 들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레미제라블의 라이벌 영화라고 생각되었던 호빗에 대한 관객들의 실망감도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오히려 레미제라블의 흥행은 역으로 봉준호의 괴물과 비교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연 그 천만의 관객 중 정치적인 영화였던 괴물의 알레고리를 알아차린 관객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러니까 괴물을 한국적인 웰메이드 괴물영화로 홍보하면서 괴물을 탈정치적 영화로 만들면서, 괴물이 흥행에 성공했다면, 레미제라블은 원래 비정치적 영화가 정치적 영화로 탈바꿈하여 홍보가 되면서 관객을 모은 역설로 보여진다.

레미제라블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많은 부분의 후보에 이미 올랐고, 얼마나 수상할지는 알 수 없지만, 보수적인 아카데미 위원회의 취향에 맞는 레미제라블은 영화의 정치를 적절히 이용한 웰메이드 뮤지컬영화일 뿐 그 이상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덧글

  • 잠본이 2013/01/20 12:08 # 답글

    아무래도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맞춰 다른 뭔가를 바라보게 되다 보니 그게 부풀려져 정치힐링영화(?)로서 받아들이는 사람도 생기는 건가보다 싶더군요. 그런데 확실히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주어서 고맙다' 정도로 끝나면 될걸 '이 영화는 정치적 의미가 어쩌고저쩌고한 영화니까 그렇게만 봐야 한다'로 몰고 가면 괴로워지죠...T.T
  • 브엘라해로이 2013/01/20 16:14 # 답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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