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Her) - 사랑이라는 불가능성 images du cinema


                      이미지 출처 allocine.fr


연애의 과정은 누구나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그(녀)와의 공통점이 있음에서, 공유하는 것들이 많음에서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연애의 과정은 그 공통점들을 넘어 그(녀)와 내가 얼마나 많은 차이들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일 것이다. 연애가 깊은 사랑의 감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차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러한 과정은 현대철학의 지점들과 이상하게 유사하다. 동일자의 철학으로서의 근대철학을 비판하며 차이 그 자체를 사유하는 것이 현대철학의 가장 중요한 쟁점인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철학은 타자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끊임 없이 질문하면서,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내 자신이 아니라, 타자의 존재가 나를 성립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하자면, 사랑은 내 자신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나를 찾는다. 소울 메이트라는 환타지가 가지고 있는 역설이 그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 또한 타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사랑에 실패한다. 그(녀)는 결국 나랑 완전히 하나 될 수 없는 차이로서의 타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면에서, 이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속에서 존재하는 연인인 사만다는 완벽한 연인이다. 그녀는 항상 주인공인 티오도르가 원할 때면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으며, 그가 어떠한 기분상태나 어려움에 있을 때라도 그를 완전히 이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이기에 티오도르를 위해 완벽하게 프로그램화되어 있으며, 티오도르에 맞게 계속 진화나는 사만다는 타자가 아니라 여자목소리만 담겨있는 티오도르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티오도르는 자신에게 이야기하며, 자신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미래시대의 사랑은 너무나 완벽하고 편하기에 이상적으로 마저 보이지만, 그 사랑에는 타자가 부재함으로써 감정적 자위행위로서만 그 사랑은 존재할 뿐이다. 이런면에서 이 영화는 영화의 결말에 티오도르 사랑이 가지고 있는 이기성을 드러내며, 그를 다시 고독한 남자로 만들지만, 낙관적인 남자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현실에 사랑을 다시 만나게 하는 해피엔딩으로 영화를 봉합해 버리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컴퓨터프로그램 연인 사만다를 통해 현실의 사랑의 불가능성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건널수 없는, 채울 수 없는 그(녀)와 나의 그 차이들은 우리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괴롭게 하여, 그 차이들이 사랑은 결국 불가능함을 말해 주지만, 그 차이들을 이해하고 인정해 가며, 나 또한 그(녀)의 타자임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끝없는 과정속에서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있을까? 사랑은 항상 불가능한 것이지만, 사랑속에서 깨닫는 그(녀)와 나의 차이들은 항상 가능함으로 가게 만드는 불가능은 아닐까? 사랑이 그렇게도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바로 그러한 차이를 넘는 불가능성에 대한 설렘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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