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 누가 사진예술가인가? images du cinema

                                                이미지 출처 allocine.fr


발터 베냐민 식으로 말한다면, 사진이 예술이냐는 질문은 무의미한 질문이다. 최초의 기계적 예술로서의 사진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새롭게 정의되어 지는지가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적) 예술에대한 반발로서의 예술이 등장하게 되는 모더니즘적 증상의 시대인 19세기 중반에 등장하는 사진이 던지는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예술가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있다. ,사진기술의 발달로 그저 카메라의 버튼만 누르면 사물이나 인물의 이미지가 그대로 복제되는 사진의 방식은 과연 사진예술가가 아마츄어 사진가와어떤 점에서 커다란 차이를 만드냐에 대한 질문 속에서 예술가의 위치를 항상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진의이러한 경향성으로 인해,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진을 art  moyen 중간(위치의) 예술로 부르며, 그가 사진 담론이 엄밀하게 말하면 미학적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이유도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사진을 미학적 차원보다는 사진의 대중성이 가지는 사회적 기능의 맥락에서 사진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진이 지니는 가치는 그러한 누구나 찍을 수있음이라는 지점에서 더욱 중요해 진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그 자동성과 선천적 리얼리즘의 경향은 이세상의 어떠한 것도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며, 누구나 찍을 수 있다는 아마츄어리즘 안에서 전문가적인사진예술가는 다른 예술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고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 사진은 항상 그러한 아마츄어와 전문가 사이에 존재한다. 그것은 사진이원래 존재하는 것만을 찍을 수 있는 매체였기에, 거꾸로 허구를 완벽하게 진실로 위장할 수 있는 매체일수 있는 것처럼 (사진 발명 초창기에 Bayard 의 자신의시체 사진처럼), 누구나 찍을 수 있음은 항상 누구나 찍을 수 없음을 담지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아마츄어적 의미에서 사진은 무엇이나 찍을 수 있는것이지만, 그 무엇이나 찍을 수 있다는 의미 안에서,  무엇을찍느냐가 사진을 통한예술의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위치를 모호하게 하면서, 예술가와 아마츄어의 미묘한 위치에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사진은 항상 새로운 예술인 것이다.




다큐멘타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에서 비비안 마이어는 그 누구의 이름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보모로서 결혼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다가 사진을 광적인 취미로 살다가 이름 없이 죽은 어느 미국여성의 이름이다.하지만, 이 다큐멘타리의 감독인 존 말루프가 발견한 그녀가 찍은 무려 15만장의 사진은 단순한 취미로 보기에는 엄청난 양이었고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존말루프는 그녀의 사진들을 홍보하며, 전시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며, 그녀가과연 누구였는지에 대해서 이 다큐멘타리를 이끌어 간다. 이런 면에서,이 다큐멘타리는 단지 한 인물을 추적하면서 역설적으로 사진이 과연 무엇인지를 더욱 잘 말해주는 다큐멘타리가 된다. 왜냐하면 직업적인 사진작가도 아니면서 왜 그녀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심지어 사진을 위해 세계여행까지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는지 우리는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주변의 그 누구도 그녀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고, 관심을 가졌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녀는 그렇게 살다가 그저 죽었다는 것이다. , 사진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위대한 아마츄어리즘은 비비안 마이어라는 여성을 통해서 증명된다. 하지만, 이 다큐멘타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결국 사진이라는 매체가가지고 있는 그러한 독특한 지점보다는 비비안 마이어를 알려지지 못했던 불행한 사진 예술가로 끌어올리는데 급급하다는 점이다. 마치 예술가의 기행처럼 비비안 마이어의 이상한 행동들을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자주 언급하며,그녀의 어머니가 프랑스인 이었고, 그녀가 프랑스의 어머니의 고향에 방문한적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그녀가가지고 있던 프랑스 혈통등을 통해 비비안 마이어가 가지고 있었을 예술가로서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다. (삐딱하게 보자면, 그녀의 사진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존 말루프가그녀의 사진가격을 올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마저 보이는 듯하다.)

오히려 이 영화가 더 파고 들었어야 하는 부분은 감독이 MoMa 에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요청했을 때, 거부당하고, 그들이그녀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입장을 좀 더 파고 들어 아마츄어의 사진과 사진전문가의 사진의 차이를 만드는 틀이 과연 무엇이고 사회적 합의를통한 예술사진이 무엇인지를 더욱 중요하게 다루지 못한 것은 이 다큐멘타리가 과연 어떠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면에서, 이 다큐멘타리는 비비안 마이어라는 아마츄어 사진작가의홍보 다큐멘타리로서 보여질 수 있다는 위험한 지점이 많은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누구나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수있는 사진이 흔해 빠진 이 시대에, 아마츄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 사이에서 존재하는 사진이라는 매체를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재기한다는 점만 가지고도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흥미로운 다큐멘타리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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