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 미국의 역사로서의 자연풍경 images du cinema

               이미지 출처 allocine.fr


서부영화는 단순히 하나의 영화적 장르가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던 수많은세계의 나라들에 비해 역사와 전통이 짧을 수 밖에 없는 미국이라는 신생국가가 필요로 했던 국가적 신화의 대중문화적 버전이 서부영화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선과 악의 대비 속에서 선의 승리, 보안관의 악당을향한 총구를 통한 정의의 실현, 미국의 서부라는 미지의 땅에 대한 개척 정신, 가족의 소중함 등등 서부영화는 미국이 필요로 했던 혹은 만들어 내어야 했던 국가의 윤리적 이데올로기를 영화이미지로서 구체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부 영화가유지했던 내러티브의 상투성과 비슷한 분위기의 반복은 서부 영화라는 장르가 헐리우드에서 결국 사라지게 했다. 존포드의 1962년 작 <리버트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미국적 영웅이 총을 사용하는 총잡이가 아니라 법을 사용하는 변호사 (미래의상원의원) 로서 바뀌는 맥락은 서부영화 스스로 부르는 서부영화에 대한 애도가 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부의 총잡이가 사라진 미국영화에서 의로운 변호사는 항상미국의 정의를 드러내는 주인공으로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2000년 대 후반에 들어 사라졌던 서부 영화가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하는듯한 미국영화의 증상은 (예를 들면, 3:10 투 유마, 더 브레이브, 슬로우 웨스트, 더홈즈맨, 장고 등) 중국의 등장으로 인한 세계의 중심으로서의미국의 힘의 약화 속에서, 서부 영화의 주인공처럼 정의를 실현하는 강력한 국가로서 미국의 이미지에 대한노스탤지어적 환타지가 원인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21세기 형 서부 영화가 다른 점은 (그러한 시도가 과거서부영화에서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부의 신화를 제거한 채 서부 영화라는 장르를 영화적 예술의 형식으로이용하고 있으면서, 미국의 진정한 역사로서 서부를 좀 더 리얼리즘의 맥락안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알렉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또한 이러한 경향성에서 멀지 않다. 망가진 몸을 이끌고 미국서부의 거친 자연을 이겨내며 320km를 횡단한 휴 글래스라는 신화적인 실존 인물을 이냐리투 감독은영웅화 하지 않는다. 즉 이 영화의 장점은 영웅담이기 보다는 고생담에 더 가깝기 때문에 서부라는 혹독한자연 그 자체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서부영화에서 자연은 이미지-액션으로서 내러티브를 담아내기 위한 수단적 풍경에 더 가까웠다면, 이 영화 속에서 자연은 초창기 미국의 역사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근원적 풍경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의 적지않은 부분이 캐나다와 아르헨티나에서 촬영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면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자연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그리즐리 곰을 제외하고는 특수효과를 거의 사용하지않았으며, 인공조명보다는 자연광을 사용했고, 내러티브 순서대로영화를 찍어나가며, 디카프리오가 실제 그 자연과 함께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속으로 실제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원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휴 글래스는 인디언 여인과 결혼하여 혼혈인 아들이 등장하며,글래스의 동료에게 살해당한 아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글래스가 끝까지 자신의 여정을 이끌어 나간다는 설정은 실제와 다르다. 말하자면, 이냐리투 감독은 혼혈의 아들을 통해서 미국이라는 원래의땅의 주인인 인디언과 침략자이면서 동시에 개척자인 백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러한 설정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맥락에서 보자면, 멕시코인이면서주로 미국에서 영화를 찍는 이냐리투 감독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복수극이라는 면에서 이 영화는 실패한다. , 거칠지만 광대한 서부의 자연의 모습 속에서 관객이 느껴야 할 복수라는 주인공의 심정은 해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복수극과 생존극 이라는 두 개의 지점의 균형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또한마치 타르코프스키를 따라하는 듯 예술영화 인양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플래쉬 백 속의 새들과 부서진 성당의 이미지들속에서 내러티브라는 측면에서는 뒤로갈수록 갈피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내러티브 구조의 허약함 속에서도 분명히 21세기적 서부영화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는것이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그 압도적인 이미지들 속에서 미국의 역사가 자연의 서부영화라는 틀로서 재탄생하게 되는 면을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