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이상한 나라의 소녀 images du cinema

                                 이미지 출처 allocine.fr


봉준호 스러운 혹은 봉준호 적인 영화란 무엇일까? 봉준호의 영화는겉으로는 장르영화로 보이지만 그 장르를 뒤틀며 사회비판적인 코드를 기묘하게 숨기는 듯 혹은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말하자면 <괴물>을그저 괴물이 등장하는 잘 만들어진 한국적 괴수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괴물을 만든 것은 과연무엇인가를 질문한다면 이 영화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강의 괴물이  가지는 장르적 함의와 사회정치적 함의의 결합이<괴물>을 독특한 영화로 만들었으며, 봉준호영화 세계를 다른 감독들의 세계와 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다. <옥자>는 거대한 짐승이 등장하는 면에서 <괴물>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괴물>에 비해 부드러운 환타지 영화에 더 가깝게 보여짐으로써 (<괴물>과 달리, <옥자>2.35:1 의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율은 이러한 면을 강화한다), 봉준호판 E.T 혹은 미야자키 하야오적 세계와 (야생과 문명의대비, 뉴욕한복판에 등장한 괴물인)킹콩을 봉준호식으로 결합한영화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육식과잉의 사회에 대한문제의식을 슬랩스틱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봉준호의 표현에 따르면 깽판의 분위기) 감독자신의 방식대로 파고드는 <옥자>의 장점에도 불구하고무엇인가 아쉬운 지점은 그 이전에 봉준호 영화가 보여주던 장르적 쾌감속에서도 은근히 보여주었던 감독의 날카롭고 잔혹한 시선이 무화됬다는 느낌이들어서일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서의 범인, <괴물>에서의 괴물,<마더>에서 엄마, <설국열차>에서의 열차는 단순히 영화적 소재가 아니라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게되는 힘을 지닌다. 그러한 질문이 영화의 잘짜여진 내러티브와 연결되면서, 봉준호 세계의 완성도를 높이게 되는데, <옥자>에서의 옥자는 단지 생명체 유전자 변형의 문제와 환경문제에 대한 화신으로만 한정되어 버림으로써 영화의 문제의식이확장되지 못하며, 동물과 아이의 우정을 그리는 월트 디즈니적 방식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교훈을 던지는영화에 그치게 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미자의 입장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한 소녀의 성장담일 것이다. 물론영화에서 느끼는 미자의 이미지에 비해 그녀는 아주 어린아이는 아니다.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시내에 나가서남자친구들도 만나고 하라는 대사도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영화가 십대 초반인 미자의 현실적인 (혹은 상징계로 진입하는) 성장담이되는 것은 산골 속에서 현실사회가 어떤 지 전혀 알지 못하던 그녀가 자신의 돼지 저금통을 깨고, 그돈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고, 결국에는 뉴욕까지 가서 자신의 원하는 존재인 옥자를 미란도 CEO와 금붙이 돼지와 교환하면서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연속에서 대부분의 것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산골에서의 삶과 달리, 모든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이상한 나라 속에서의 한 소녀의 성장담  혹은 생존기인 것이다. 심지어그녀는 금붙이 돼지와 옥자를 교환하는 장면에서 영화대사를 갑자기 유창하게 하며 국제화된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거래 속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깨달은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자의 이러한 태도는 <설국열차>에서 자본주의와 계급의 투쟁을 위해 달리는 인물들의 입장과 달리 이제는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는 선언처럼보이기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자>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절망으로 끝나버리는 그의이전 영화에 비해희망을 말하는 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가장 길게 보여지는 마지막 피해자는여중생이며, <괴물>에서 주인공 여중생은 괴물로부터구해지지 못하고, <마더>에서 여고생은 생활고와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자살한다. 봉준호 영화에서 10대 소녀들인여중생, 여고생은 사회의 약자로서 가장 비참한 희생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옥자>에서 여중생 나이로 보이는 미자는 살아남는다. 오히려 의연하게 서울과 뉴욕에서 살아남아 마지막 장면에 집으로 옥자를 데리고 돌아와 할아버지와 식사한다. 봉준호는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자본주의는 더 이상 저항하기 보다는 그저 거기서 살아남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절망적 선언일까? 영화에 대한 전권이 주어졌더하더라도넷플릭스라는 거대자본의 압박에 자유롭지 못했을 <옥자>에이은 봉준호 세계의 새로운 깽판의 귀환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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